[축구] 대한민국은 외국인 지도자가 필요하다

스포츠 2014. 6. 26. 11:45


1. 월드컵이 다 되서야 곪아터진 상처




대한민국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아마 내일(6월 27일 금요일)로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큰 이변이 없는 한 - 공이 둥글다고 하지만 실력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기에 - 축구대표팀 전용기를 타고 돌아와서 고국 땅의 김치찌개를 곧 먹을 수 있게될 것이다. 브라질 한인타운의 김치찌개 맛은 그리 훌륭하지 못하다고 들었기에 빨리 고국에 돌아와서 맛있는 걸 먹길 바란다. 환영한다.



한국 축구 역사상 대표팀이 월드컵에서의 성적으로 국민들에게 이렇게 조롱당한 적이 있었던가. 같은 조별 예선 탈락이라도 94년과 98년의 월드컵에서는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주는 근성과 승부욕을 보여주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었다. 하긴 우리가 언제부터 당연히 16강 가는 나라였니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리더도, 근성도, 투지도 없고 변화도 느낄 수 없는 한심한 모습만을 시종일관 보여주며 쓸쓸히 짐을 쌀 준비를 하고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했다. 16강? 이런 팀에게 그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홍명보는 박주영, 기성용과 윤석영을 위시한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삽질 많이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 준수한 성적을 거두어왔다. 처음 U-20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홍명보는 '이탈리아식 축구를 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가이드라인이 분명해서 좋았다. 확실히 그 때 홍명보의 팀 컬러는 보수적이고 수비적이지만 밸런스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안정적인 구조 위에서 공격도 꽤 탄탄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런던 올림픽에는 군복무 논란이 있던 박주영을 끌어 안으면서 동메달까지 따내는 실적을 올렸다. 어쩌면 이 때 국가대표 감독생활을 그만두고 이 후에 리그감독으로 경험을 쌓았어야했다는 생각이 결과적으로 든다. 




활동적 타성이라는 경영 용어가 있다(런던 정경대학 도널드 설 교수). 환경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성공방식만을 고수하는 성질을 뜻한다.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면, 100년동안 사선 전투 대형으로 유럽을 호령하던 18세기 유럽의 맹주 프로이센이 100년간의 성공을 믿고 같은 전술만 고집하다가 지형지물을 이용한 나폴레옹의 변칙적인 전술에 무참히 패배했다. 거의 나라의 태반이 정리될 정도로 처참하게 조각이 났다.

간단한 예시로, 도둑은 대문이 열려있어도 굳이 담장을 넘는다고 한다. 인간에게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 본능이 존재한다는 것이 활동적 타성의 골자가 되겠다. 홍명보 감독은 활동적 타성에 젖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One Team을 주장했지만, 원칙에서 어긋나는 박주영과 윤석영의 발탁을 통해 스스로 원칙을 깨고, 소를 위해 대의를 그르치는 지휘관으로 거듭났다. 그동안 자기 밑에서 잘해주었던 아이들을 뽑아서 데려가려고 한 것이다. 심지어 분데스리가를 씹어먹고 있던 레프트윙백 옵션인 박주호가 있었는데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국가대표에서 아예 제외를 시키려 했었다. 이미 그의 마음속 레프트윙백은 윤석영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박주영도 마찬가지다. K리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매일매일 노력하는 훌륭한 공격수들 (김신욱이 대표적)은 외면하고, 져니맨으로 먹튀질만 몇년째 반복하고 있는 박주영을 보며 '그만한 공격수가 없다'는 소리로 국민들에게 광역 어그로를 끌며, 원칙까지 깨가면서 발탁을 했다. 



홍명보. 과거의 그는 세계를 주름잡던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였을지 모르나, 이제는 그저 과거 자신의 성공만을 reference로 삼는 무능한 지휘관일 뿐이다. 과거 자신의 성공방식이 이번에도 똑같이 먹힐 것이라는 도박에 가까운 희망을 품은 낙천주의자거나, 학연지연이라는 부정하고 편협한 소의에 함몰된 꼴통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2. 대한민국에는 외국인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대적이고 자극적인 발상일 수 있으나, 논리적으로 틀린 부분이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선수발탁의 공정성(실력), 두번째는 축구협회로부터의 독립성, 세번째는 선진축구의 도입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들 아니냐고? 그 당연한 것도 전혀 지켜지지 않아서 곪아터진 상처를 요즘 여러분들은 새벽에 두 눈으로 확인하고 계십니다.



1) 선수 발탁의 공정성


홍명보호가 자가당착에 빠진 것은 '의리축구'라고 불리는 공정성의 결여가 가장 크다. 속마음은 아마 그도 다른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그도 박주영을 빼고 싶고, 다른 잘하는 애들 주전으로 쓰고 싶을거다. 하지만 이미 그가 세운 대의명분 하에서는 우리 주영이가 터져줘야한다. 도박을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하니까! 국가지대사를 도박처럼 '언젠가 터질거야'라는 희망에 찬 경우의 수로 결정하는 지휘관이 이 세상에 어디있는가? 그는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 감독이 프리미어를 한참 씹어먹던 사미르 나스리를 팀컬러와 맞지 않는다고 제외한 것을 보라. 지단 이후에 인물이 없다던 아트사커의 프랑스는 그 없이도 조예선 1위로 2014년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또한, 98년 월드컵에서의 히딩크는 전설의 오렌지 삼총사(레이카르트, 반 바스텐, 루드굴리트)를 팀 분열의 주범이라고 판단하여 모두 팀에서 쳐내고 베르캄프를 중용했다. 그리고 그의 네덜란드는 4강에 진출했다. 데샹과 히딩크는 공정했다. 리그들을 두루 돌면서 가장 훌륭한 선수가 누구인지, 어떤 선수가 자기 팀에 득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필요하다면 읍참마속의 고사도 서슴없이 재연했다. 



당장 2002년의 대한민국만 봐도 그렇다. 김남일, 이을용, 그리고 박지성. 이들이 축구계에서 주류였던가? 누구보다 소외받고 눈물 많이 흘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히딩크는 실력만을 보고 그들을 뽑았다. 축구협회의 권위에 찌든 인물이 국가대표 감독에 있었다면 그들은 지금 그자리에 없을 것이다.



혹자는 히딩크가 4강 신화만 안겨다줬을 뿐,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한 바는 전혀 없다고 개소리를 했다


이사람이 그사람이다



과연 그럴까?



히딩크는 한국축구 역사에 남을 보물인 박지성과 이영표를 키웠고 그들이 2006년과 2010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책임졌다. 심지어 본인도 2010년에 그 무능함에도 필드 위의 감독 박지성 덕분에 수혜를 입었다. '한국인 최초의 16강 감독'이라는 타이틀도 따지고 보면 박지성이 달아준 것과 진배 아니다. 감투 쓰게 해줬으면 곱게 있을 일이지, 그런 사람이 어찌 저렇게 생각 없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그 뿐 아니다. 2014년 월드컵에 출전한 아이들(우리 흥민이..), 그리고 K리그에서 펄펄날고 있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들 모두가 2002년 월드컵이 낳은 아이들이다. 축구하는 그들과 지켜보는 우리들 모두 2002년의 영광을 보면서 자랐다. 히딩크 덕분에 K리그 수준이 간접적으로 올라간 것을 정말 모르는걸까? 비약을 하자면 장장 10여년 이상을 책임진 것이다. 그런데도 장기적으로 그가 한 일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백번 양보해서 히딩크가 장기적으로 해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치자. 월드컵 4강 보냈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 히딩크는 축구협회에서 돈 많이 주고 고용한 전문경영인이었다. 그 경영자가 좋은 실적을 내서 이해관계자들의 주가도 몇수십배로 올려줬다. 이 정도면 최고의 전문경영인 아닌가? 장기적이던 단기적이던 우리에겐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공정한 선수발탁을 할 수 있는 인물. 


대한민국 지도자 중에 축구협회랑 등져가면서까지 싸우고 선수발탁을 할 수 있는 감독이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면 그들의 입김은 너무나 강하고, 그들과 등을 지면 야인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2) 축구협회로부터의 독립성 및 선수단 장악능력(파벌문제)



외국인 감독의 흑역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조 본프레레 감독이 일전에 축구협회에서 선수발탁과 관련하여 외압이 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FIFA도 마찬가지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관피아 조직이다. 국가에서 받은 세금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돈을 쓰고 권력을 휘두르는 조직이다. 조중연 이회택 김주성 황보관 허정무 같은 이들이 몇 수년째 철밥통을 잡고 놓지 않는 조직이다.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져도 돈으로 유야무야 잘 막고 계속 썩은 짓을 계속한다. 겉으로는 책임자가 책임지고 사임하는 척 하지만 여전히 뒤에서 입김을 불어대고 있다. 심지어 옳은 소리 - 차범근의 K리그 승부조작 폭로 - 를 해도 그것을 축구협회에 대한 품위훼손 죄목으로 낙인 찍어 해당발언자를 귀양살이 보낸다. 덕분에 차범근 전 감독은 중국에서 몇년 지내다 왔다. 그리고 몇년 뒤 승부조작은 현실로 드러났다.


축구협회 안에는 파벌이 존재한다는 건 이젠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의 파벌 안에서 홍명보는 최적의 옵션이었다. 나라를 대표하기에 충분한 네임밸류를 지녔고, 고려대 출신이다. 그리고 감독으로도 나름 부끄럽지 않은 커리어를 지녔으니 그럴 수 밖에. 결국 축구협회는 자기들 구미에 맞는 감독을 고르는 것이고, 독립성을 주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마음에 안들면 바로 잘라버린다.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 도중에 쫓겨났고, 최근에는 조광래가 그러했다.


개인보다 단체 개념이 우선하는 대한민국의 민족성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뭉치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우리'를 강조한다. '우리 가족'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껴주지만,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소외당한다. 아마 이것은 그 '우리 가족'들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으리라. 


홍명보 본인도 선수시절에 '열하나회'라는 친목모임을 조직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선수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모임이라는 해명도 있지만, 열하나회에 들지 못한 선수들이 소외당했다는 것은 그 해명이 개소리라는 방증이다. 히딩크 감독은 그 파벌을 경계했었다. 한 때 히딩크가 홍명보를 엔트리에서 제외시키며 강하게 조련 시킨 데는 이런 배경도 깔려 있었으리라. 누가 위고 누가 아래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파벌이 존재하는 한 'One team'은 절대 불가능한 목표니까. 그런 역사가 기성용을 낳았고 윤석영을 낳았다. 그들이 최강희 감독에게 어떤 불경을 저질렀는지 대한민국 국민 알 사람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선수 파벌의 선구자 밑에서 또다른 싹이 자란다. 이런 싹을 제거하려면 애초에 외국인 지도자가 와서 정리정돈을 해줘야 한다. 그것도 아주 성질 고약한, 이를테면 무리뉴 같은, 외국인 지도자 말이다. 선수단을 Nano단위로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와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딴 생각을 못하지.




3) 선진 축구의 도입


더 말할 것도 없다. 2002년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한국 경기 보고 이 동영상 보니, 같은 나라 맞나 싶을 정도다



우선 빠르다. 빠르고 정교하며 악착같다. 역동적이다. 네덜란드 특유의 잔인한 양민학살 전술 - 정신없이 때리며 이미 전의를 상실한 적마저도 더 가혹하게 벼랑까지 몰아부치는 - 위에 대한민국의 '흥'이라는 정서가 스며드니 도저히 막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히딩크는 본선에서 상대방에 따라 여러가지 맞춤형 전술을 꺼냈고, 거의 모두 적중시키는 무서움을 보여줬다. 지금의 홍명보는 과거의 성공에 젖어 4-2-3-1 전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Plan B가 없다. 이는 전임 허정무감독도 마찬가지였는데, 완벽한 Plan A가 먹혀들어가면 편안한 운영이 가능하지만, 약간의 deviation이라도 발생하면 크게 흔들리는 모습들을 보여온 것이다. 유연성이 없는 대처다. 아시아의 맹주이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한없이 약팀인 상황에서 한국대표팀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기에 어쩔 수 없는 운영방식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물론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에서는 탄탄한 Plan A를 통한 보수적인 운영도 중요하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 시절에는 조금 과장 보태서 Plan Z까지도 마련이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 훌륭한 감독의 KPI중 하나인 것이다. 박지성이나 안정환같은 선수들의 천재성은 완벽한 전술 위에서 만개하기 시작했다. 기성용, 구자철, 이청용. 이들의 개인기량과 천재성이 2002년 선수들과 비교하여 떨어진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의 이유는 단 하나. 전술과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는 개인기는 남한산성 위의 공허한 메아리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감독은 협회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갖춘 외국인 명장이어야 한다. 일본처럼 트루시에, 자케로니 같은 2nd tier 감독이 아니라, 라파엘 베니테즈나 마르첼로 리피 급의 명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2002년의 영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은 상상만 해도 머리털이 또 곤두선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세대들이 오늘날의 실패를 보면서 얼마나 실망을 하고있는가. 선수들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잘 짜여지지 못한 판 위에 세워진 탑은 말그대로 사상누각일 뿐이다. 감독은 축협의 꼭두각시고, 그 감독은 또 자기 원칙까지 깨가면서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들을 조롱하는 것과 다름없는 선수선발을 하고, 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 데도 같은 전술을 고집한다.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는 운영이다. 이래서는 한국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도 식을 것이고,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클럽팀보다 국가대표의 인지도가 더 높은 나라에서는 국가대표팀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강도 높게 혁신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우리 나라 축구는 카리스마적인 외국인 감독의 지휘만이 작금의 고통스러운 난국을 타개하는 데 대한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