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안철수는 왜 실패했나

우리 사는 이야기 2014. 10. 6. 15:36


제가 민주당을 먹었습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이 민주당과 합당을 결정한 직후 당시 핵심 당직자들한테 했다고 알려진 얘기다. 201432일 새벽이었다.


“2석의 새정치연합이 126석의 민주당을 집어삼켰다.” 32일 오전 10시 안철수 위원장과 김한길 대표가 국회사랑재에서 합당을 발표한 직후 언론의 시각은 대체로 이랬다. “민주당을 먹었다는 안철수 위원장의 셈법과 별다르지 않았다. 아직 창당도 하지 못한 정당이 반세기가 넘은 정통 야당과 55 합당을 했다면 누가 봐도 성공한 M&A였다. 안철수 위원장은 단숨에 제1야당의 공동 대표가 됐다.




정작 먹은 정당과 먹힌 정당의 분위기는 겉보기와는 정반대였다. 사실 민주당은 가만두면 가라앉을 배였다. 이미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단 자리 숫자까지 곤두박질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이 이반되고 있었다. 때마침 바로 옆에서 새로운 배가 건조되고 있었다. 안철수호였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강력한 엔진까지 갖추고 있었다. 난파선을 구할 방법은 안철수라는 새 배 안에 민주당이라고 하는 헌 배를 포개 넣는 방법뿐이었다. 김한길 대표는 담판을 통해 그걸 이뤄냈다. 33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한길 대표가 박수갈채를 받은 이유다.


반대로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들은 사분오열됐다. 당연했다. 새정치연합 입장에선 새 배와 헌 배를 맞바꿀 이유가 없었다. 물론 새정치연합한테도 약점은 있었다. 신생 정당인 만큼 조직력과 자금력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의 조직과 인물을 가져올 수만 있으면 일거에 해결될 문제였다. 합당 카드도 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단 얘기다. 이 때 안철수 위원장의 결정적인 약점이 다시 한 번 노출됐다. 승부사 기질의 결여였다.

 




안철수 위원장은 그동안 결정적인 승부처마다 실패했다. 201192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설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였다. 안철수 현상이 현실 정치로 옮겨붙은 발화점이었다. 이제 출마만 하면 당선될 일이었다. 박원순 희망 제작소 대표와 담판을 벌인 끝에 출마의사를 접었다. 그땐 아름다운 양보 같았다. 냉정하겐 마땅히 챙겼어야 했던 자기 몫의 정치적 자산을 거져 내준 꼴이었다. 지금 박원순 시장은 재선에 성공하면서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평가받는다. 안철수와 박원순은 그 때 명암이 갈렸다.


201212월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선에 출마했지만 완주하질 못했다. 안철수 후보의 등장으로 박근혜 대세론은 크게 위협받았다. 남은 과제는 후보 단일화였다. 돌연 안철수 후보는 사퇴를 결정했다. 승부처에서 또 다시 칼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별로 아름답지 않은 양보였다. 극적인 드라마를 완결짓지 못한 반쪽 단일화는 대선에서 기대만큼 파급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문재인 후보는 낙선했다.


합당도 마찬가지였다. 새정치연합은 이미 민주당을 안에서부터 크게 흔들어 놓은 상태였다. 적잖은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은 새정치연합으로 배를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6.4 지방선거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7.30 재보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면 야권을 재편시킬 수 있다는 로드맵도 다 짜인 상태였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결국 승부였다. 안철수 대표는 또 승부를 피했다.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밖에서 민주당을 삼켜먹는 것보단 안에서 민주당을 부셔먹는 게 당장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였다.


안철수 대표의 정치인생을 결정한 패착이었다. 민주당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안철수 현상이 기득권 정치에 수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안철수 대표는 자신이 어디로 가든 안철수 현상이 따라올 거라고 여겼다. 실제로 안철수 현상이 시작된 2011년부터 3년 동안 내내 그랬다. 안철수 대표가 승부처에서 머뭇거리고 결국 패배하고 돌아와도 안철수 현상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안철수 현상은 결국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했다. 여야 모두의 유권자들이 한국의 대의 정당 정치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안철수 대표처럼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정치인이 제대로 된 대의 정치를 실현해주기를 바랐다. 한국사회 각계 각층의 지식인들도 같은 생각들이었다. 유수한 학자들과 명망가들이 안철수 대표 곁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이유다. 그 땐 안철수 대표가 곧 안철수 현상이었다.


비록 제3지대 창당이라는 포장을 하긴 했지만 합당은 결국 안철수 대표가 기존 정당에 합류한 그림이었다. 이 때 안철수 대표와 안철수 현상은 결정적으로 괴리되기 시작했다. 먼저 구름처럼 안철수 신당에 합류했던 인사들이 안개처럼 떠나가기 시작했다. 말이 합당이었다. 사실상 안철수 대표 혼자서 단기필마로 민주당 안으로 들어간 꼴이었다.


안철수 대표는 이때부터 진짜 헤매기 시작했다. 사실상 혈혈단신인데도 자신이 민주당을 먹었다고 착각했다. 오히려 민주당에 새정치라는 새로운 가치만 따먹힐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위험은 간과했다. 세력도 조직도 없는 상태로 당 대표라는 자리만 갖고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운영할 수 있다고 오판했다. 기업의 CEO와 정당의 대표는 다르다는 걸 겪어본 적이 없었다. 대표이사는 기업의 주인이지만 대표 의원은 정당의 대리인일 뿐이다.


실제로 안철수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간판만 바꿔 달았지 조직은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계파 난립이 극심한 정당이다. 기껏 친박과 비박 정도로 나뉘는 새누리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해로 뭉친 여당과 이념으로 뭉친 야당의 태생적 차이다. 당대표라도 계파 간 알력 다툼 탓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민주당에 당대표 출신이 넘쳐나게 된 이유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노동당 개혁에 나서면서 당을 개혁하는 일이 나라를 개혁하는 일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계파 안배와 정세 변화에 따라 돌아가면서 당 대표를 했지만 누구도 당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태생부터 민주당의 유전병을 물려받았다. 이대로라면 자칫 안철수 대표 자신도 앞선 민주당 대표들처럼 선거용 간판으로 전락할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안철수 대표한텐 당을 장악할 조직이 전무했다. 자초한 일이었다. 결국 김한길 대표의 전략과 전술과 조직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김한길 대표가 사석에서 안철수 대표를 철수야라고 부를 만큼 서로 막역한 사이였다.


김한길 대표는 지략가와 모사꾼의 양면성을 지닌 정치인이다. 김한길 대표는 안철수 대표를 끌어들여서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를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대통력제 국가에서 당내 계파란 결국 유력한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친노 쪽엔 문재인 의원이 있었다. 비노쪽엔 마땅한 대항마가 없었다. 김한길 대표는 국정원 댓글 사건 정국에서 여권을 상대로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제 집권 1년 차인 박근혜 정부는 막강했다. 안철수 카드는 당내에서 문재인 의원과 친노를 견제하면서 김한길 대표의 당권을 강화하기 위한 지렛대였다.


김한길 대표는 안철수 대표를 간판으로 내세운 다음 당내 세력 확장에 열을 올렸다. 김한길과 안철수 체제가 살려면 당권을 잡고 있을 때 확실하게 세력을 구축해놓아야 했다. 견제대상은 친노 진영과 박원순 시장이었다. 당리당략으론 맞았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선 무리한 전략 공천이 이어졌다. 말이 좋아서 전략 공천이지 결국 탑다운식 총재정치였다. 12년 전엔 오픈 프라이머리로 대통령까지 배출한 정당의 비극적 퇴행이었다.


문제는 모사 정치의 유탄을 안철수 대표가 고스란히 다 맞을 수밖에 없다는 정치현실이었다. 새정치의 상징은 안철수 대표였다. 결국 인철수 현상마저 안철수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안철수 대표를 통해 대안 정당을 기대했던 유권자 집단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안철수 대표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안철수 대표는 안철수 현상이 내려준 사명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엔 정치인으로서 승부사적 기질이 결여된 선천적 약점 탓이었다.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지만 그들이 왜 자신한테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았던 후천적 CEO 리더십 탓이었다. 이건 대의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과 훈련 부족으로 나타났다. 나중엔 안철수 현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오만함 탓이었다. 안철수 의원의 실패는 안철수 현상이란 시대적 요구를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감당하지 못해서 빚어진 일이다.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대표는 이제 완전히 괴리됐다. 안철수 의원한테 재기할 여지가 별로 없는 이유다. 안철수 현상이 없는 안철수는 초선의원일 뿐이다.


2012919일이었다. 안철수 원장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출마 선언을 마무리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안철수 원장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2년 뒤 안철수 의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미래가 됐다. 흩어진 과거가 됐다.




출처 : 에스콰이어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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