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신해철을 추억하다
음악 2014. 10. 28. 10:24
지금부터 보실 포스팅은 아주 Cheesy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Viewer discretion is advised.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삶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면서 산 덕분에 지금은 사람구실 비슷하게나 하고 살지만, 10대의 나는 홍대광의 노래 제목따나 '답이 없는' 삶을 살던 중생이었던 것 같다. 사람구실이라는 단어가 곡해를 일으킬까 굳이 부연 설명을 하자면, 친구가 없거나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하고싶은 일도 없었고 삶의 의욕도 없었기에 답이 없었다는 거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한다지만 난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직무유기라고 볼 수도 있었고. 항상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는 다른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했지만 그렇게 될 수 없었고,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다보니 언제나 누구 주변에서 겉돌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와 환경에 대한 불만은 쌓여만 갔고 타인에 대한 부러움은 자격지심이라는 비수가 되어 내게 꽂혀서 빠질 기미가 안 보였다. 외로웠다.
그런 나한테 디스토션 잔뜩걸린 일렉기타로 대표되는 록음악 사운드는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책이었다. (지금이야 Smoke on the water라고 하면 Deep Purple의 그것을 듣지만, 중딩 때는 우리나라 메탈밴드인 Crash가 데스메탈로 재해석한 버전만 들었다. 그 쪽이 더 시원했으니까) 그리고, 신해철이 리드보컬로 있었던 불멸의 록밴드 넥스트의 음악은 나의 방황하던 10대 시절을 함께하던 좋은 벗이었다. 요즘은 존재조차 희미한 Aiwa라는 일본제 CD Player (혹은 워크맨) 안에 넥스트의 CD는 거의 항상 꽂혀있었던 것 같다. 날 받아줄 것같지도 않았던 세상에서 신해철과 록음악은 내 삶에 의욕을 주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천재가 아닌가 싶었다. 축구선수로 따지면 데뷔 때부터 기복도 없고 성장도 없이 꾸준히 클래스를 뽐내던 지네딘 지단같은 느낌이랄까. 무한궤도로 시작한 이후로 그는 인형의 기사, Here I stand for you, 이중인격자, 도시인 같은 노래들을 어셈블리라인의 속도로 창작해냈다. 짐작컨대 그는 그 몇 년간 Creativity 안에서 헤엄치며 살았던 것이다.
거의 모든 앨범이 꾸준히 사랑받은 중에서 내가 꼽는 최고의 명반은 단연 4집이다. Lazenca - A Space Rock Opera - 라는 제목의 앨범. 참으로 안타깝게도, 넥스트의 지원마저도 영혼기병 라젠카의 흥행을 구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안에 담긴 메세지와 멜로디들이 내 어린 영혼은 구원했던 것 같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듣고 힘을 낸 사람이 한둘이었을까. The Hero라는 곡에 공감한 사람이 나뿐일까. Lazenca, save us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해드뱅잉한 사람은 또 몇이었을까.
넥스트 4집.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도 덕후였던 것이다. 내 동류. 내 본질.
이 앨범 이후로 그는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서 Monocrom이라는 앨범과 함께 '일상으로의 초대'를 내놓는다. '록음악만' 고수하던 그 당시의 내게는 와닿지 않는 몽환적인 사운드가 불쾌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 노래도 역시나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으로의 초대 Live. 오늘 아침 출근길에 듣다가 (가을이라 날도 춥고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이제 해철이형이 록음악을 버린건가..하고 생각했었지만 다행히 이 후로도 Overaction man같은 시원한 록넘버들은 계속해서 내놓았다. 덕후감성, 폭발하는 록스피릿, 감동을 주는 멜로디까지 그의 정신세계는 교주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그 공부 안하고 놀던 고3 시절 및 재수시절 새벽 2시의 고스트 스테이션은 거의 사수 했겠냐.
고스트 스테이션은 속된 말로 '지 꼴리는대로'하는 방송이었다. 아슬아슬한 수위의 이야기들을 개념있게 풀어내는 그의 입담, 그리고 청취자가 곡신청해봐야 소용없고 지맘대로 트는 음악선정. 어느 날 밤인지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는데, 독일 메탈밴드 Rammstein의 신보가 나오자 그 1번 트랙이 마음에 든다며 연속으로 3번을 재생시켜 청취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게 그 노래. 여담으로 해철이형은 독일어로 구성지게 랩도 했었다
이토록 내 10대 시절의 많은 기억을 심어준 신해철, 그의 음악과 고스트스테이션은 군입대를 하게 되면서 자연히 멀어졌고, 그의 활동에 어느덧 관심을 두지 않기 시작했다. 종종 토크쇼에 나오거나, 싸이와 공연을 한다거나, 트위터에 정치적인 내용을 적었다가 딴지 걸리거나 하는 식으로 이슈몰이는 했었지만 청소년기에 내가 그에게 가졌던만큼의 관심은 가질 않았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의 그와 21세기의 그는 내 머리속에서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버려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 그가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클잭슨 형님이 떠났을 때보다도 더한 슬픔을 느낀다. 마형처럼, 해철이형이 남긴 위대한 음악들로 그를 추억할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내 10대의 큰 부분을 차지한 고인의 명복을 빌며, 마지막으로 얼마 전 비정상회담에서 그가 그의 장례식에 틀어달라고 부탁했던 곡을 함께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민물장어의 꿈
Rest in Peace,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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