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을'의 역습

우리 사는 이야기 2015. 2. 13. 17:25




바야흐로 '을'의 역습이라 할 만한 시대다.



최근 몇 개월간 이 나라를 발칵 뒤집었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의 결말은, 피고에게 징역 1년이 구형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이 와중에 인터넷 구인업체인 알바몬은, 아르바이트 사원들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나열하는 광고를 만들었다가 일부 점주들에게 역공을 당하기도 했다. 해당점주들은 '사장몬'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그들을 악덕점주로 몰아가는 알바몬에 대한 투쟁을 시작했으나, 소비자들의 불매운동과 빗발치는 비난에 페이지를 폐쇄하고 활동을 중단했다. 두 케이스 모두 '을'의 승리를 대변하는 소식들이다.




형식상 갑을관계는 계약관계다. 갑으로써, 을로써 이행해야하는 책무들로 계약을 맺고 하나하나 준수해나가는 것이다. '을'은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 그리고 '갑'은 댓가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는 아주 단순한 그림이다. 




그런데 이 고질적인 갑을 관계의 병폐가 계속 곯아터지는 이유는 대한민국에 팽배한 '손님이 왕이다' 식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제조업 기반으로 산업화시대를 겪으며 초단기간에 이룩한 고속성장의 저변에는 '까라면 까는' 문화가 깔려있었다. 대통령부터가 군인이었는데 말 다했지. 그 문화에 젖어있으면서 위로 올라간 일부 사원들은 중년이 되어 명령을 내리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까라면 까는' 문화가 기업 안에만 있어준다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지식 기반, 서비스 기반의 산업들이 쏟아져나오면서 '까라면 까는' 문화가 회사 내부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 번지고 말았다는 거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2013년에 있었던 포스코 계열사 임원의 항공기내 난동 사건이다. 이 사건은 기업 안에서의 자신의 지위와 사회 내에서 본인의 위치에 대한 혼동이 낳은 촌극이었다. 




인터넷이나 미디어가 엄청나게 발전해버렸다는 점이 포스코의 저 임원에겐 참 운이 없는 부분이었다. 그는 당연하게도 언론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받고, 회사에서는 보직해임 당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포스코 임원으로서 그의 생명은 사실상 끝났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도 억울할만 하다. 그는 저런 부조리들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의 진정한 실수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마저도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시행착오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옥살이는 꽤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여론은 '너무 형량이 가볍다'라고 하는데, 기간을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제는 갑질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갑들도,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바야흐로 '을'의 역습이라 할 만한 시대다.






사진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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