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8.17 [드라마] 정도전은 실패했다

[드라마] 정도전은 실패했다

덕질/드라마 2014. 8. 17. 22:52


1395년이었다. 조선왕조가 개창한 지도 4년이 돼가고 있었다. 정도전은 그해 집필한 <경제문감>에서 이렇게 썼다. “흉년이 들면 민생을 안정시키기에도 벅찬데 탐관오리들은 오히려 백성의 고혈을 짜내려 든다. 이는 소가 숨차 하는데 오히려 채찍질을 하는 격이다. 소가 격동하여 치받게 됨은 필연적이다.”

태조 4년이면 한양으로 천도한 이듬해다. 개국하고 천도까지 다 한 시점이었다. 사회 개혁의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마땅한 때였다. 정작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고릿적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공신들의 부정 축재가 근본적인 문제란 걸 간파했다. 특히 조준과 하륜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었다. 하륜은 원래가 고려 말 권문세가의 거두 이인임의 조카사위였다. 하륜이야 그렇다 쳐도 조준이 문제였다. 조준은 고려 말 정도전과 함께 계민수전을 주장한 장본인이었다. 계민수전이란 나라의 땅을 백성의 숫자만큼 골고루 나눠준다는 정책이었다. 사회주의적 발상이었다. 

급진적인 정도전의 계민수전 정책은 보수적인 정몽주의 훼방 탓에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정몽주는 정도전에 비하면 온건개혁적이던 조준을 설득했다. 결국 계민수전 대신 과전법을 실시했다. 과전법은 나라의 땅을 사대부들한테 나눠주면 그 땅을 백성들이 임대해서 농사를 짓게 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계민수전에 비하면 미온적인 정책이었다. 이 정도로도 고려 백성들은 기꺼이 조선 백성이 되겠다고 나섰다. 정도전은 그 힘으로 조선 창업이란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고작 개국 4년 만에 과전법의 도덕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고려 말엔 백성들한테 새 나라만 세우면 경제 민주화가 이뤄진다는 희망이라도 읊어줄 수 있었다. 이젠 희망조차 흔들렸다. 계민수전도 아니고 과전법에서조차 밀리면 다시 고려 시대로 퇴보하는 것이나 진배 없었다. 

게다가 그 퇴보와 부패가 혁명의 내부에서부터 싹트고 있었다. 사실 조준도 하륜처럼 뿌리는 고려의 귀족이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이렇게 썼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이런 민본의 나라를 이루는게 정도전의 비전이었다. 조준한텐 조선 창업 이후의 비전은 없었다. 고려 귀족을 무너뜨리고 권세를 장악한 걸로 혁명은 끝이었다. 이래선 백성들 입장에서 땅 주인이 귀족에서 사대부로 바뀐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정도전은 혁명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치 현실은 정도전한테 불리했다. 상당수 사대부들이 조준과 같은 입장이었다. 흔히 조선은 이성계를 도와 신진 사대부들이 세운 나라로 불린다. 틀렸다. 조선은 비주류 사대부들이 변방의 무장이었던 이성계의 무력을 앞세워 주류 사대부들을 포섭하고 고려 귀족을 밀어내서 세운 나라다. 정몽주가 천출이라고 공격했던 정도전과 말이나 돌보고 있던 남은이 대표적인 비주류 사대부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비주류가 주도권을 잡았지만 수적으로는 주류 사대부들이 우위였다. 주류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공부해서 유자라 칭할 뿐 사실 고려 귀족과 출신 배경은 유사했다. 원래는 토지 귀족인데 고려 말에 최첨단 학문인 성리학을 공부한 자율형 사립고나 특목고 출신쯤 됐다. 

개국 초기 정도전은 이성계를 옹립한 공으로 정치 권력을 틀어쥐었다. 정작 정도전은 여전히 비주류에 소수파였다. 정도전이 권력의 정점에 선 뒤에도 변함없이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의 정적 이인임과는 달랐다. 이인임은 자신의 권력 기반인 고려 권문세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치를 했다. 그렇게 자신의 권세도 강화했다. 정도전은 자신의 권력 기반인 사대부들과 노선 투쟁을 벌였다. 창업의 또 다른 기반인 이씨 왕가의 왕자들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정도전은 오히려 개혁 속도를 더 높이려고 들었다. 정도전한텐 민본 정치를 막아선다면 조선 왕실과 사대부라는 새로운 지배 계층도 개혁 대상에 불과했다. 

1398년 8월 26일 밤 10시 무렵 정도전은 죽었다. 정도전은 늦은 밤 남은과 함께 회식을 하다다 이방원한테 척살당했다. 물론 정도전을 죽인 건 이방원의 칼이었다. 정도전을 죽음으로 내몬 건 시대였다. 시대를 틈 탄 조준의 처세와 하륜의 정략이었다. 

태조 7년인 그때 조준은 좌정승 자리에 있었다. 조준은 그 무렵 정몽주에 이어 보수개혁파의 좌장 자리에 올라 있었다. 정몽주가 죽고 조선이 창업했다고 해서 정몽주가 주창하던 보수개혁 노선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사실 개혁의 쟁점은 고려냐 조선이냐가 아니었다. 사회 개혁의 속도와 방법과 방향이었다. 개국은 정도전이 내세운 급진적인 개혁 수단일 뿐이었다. 개국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 만큼 정몽주가 죽고 개국이 됐다고 해서 보혁 갈등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귀족 출신이자 중도파 사대부인 조준한테 보수개혁적 사대부들의 지지가 모인 건 당연했다. 대다수 사대부들은 정도전의 급진개혁 정책에 넌더리가 난 상태였다. 정도전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한양 땅을 일반 백성들한테까지 골고루 나눠줬다. 요즘으로 치면 강남을 개발하면서 압구정동과 청담동 땅을 서울 시민들한테 나눠준 셈이다. 무상 급식조차 논란거리인 한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배 정책이다. 물론 사대부들은 반발했다. 사대부들은 자기들끼리 한양 땅을 나눠 갖고 싶어 했다.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자 조준을 비롯한 사대부들은 즉시 이방원한테 충성을 맹세했다. 정도전을 두둔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도 정도전의 개혁 작업이 중단되길 내심 바랐다. 때마침 이방원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울고 싶은데 정도전을 때려준 격이었다. 

하륜이 뒤에 있었다. 하륜은 고려 귀족의 잔당이었다. 이인임을 도와 정도전의 개혁 시도를 와해시켰다. 정몽주를 도와 정도전의 역성 혁명을 방해했다. 결국 이방원을 도와서 정도전의 개혁을 좌초시키는 데 성공했다. 조선이 개국됐어도 여전히 지배 계층은 대동소이했다. 간판이 바뀌었다고 당장 내용까지 바뀌진 않는다. 하륜은 조선에서도 경제적 이득을 보장받고 싶어 했던 기득권 세력을 대표했다. 결국 새로운 기득권 세력과 과거의 기득권 세력이 합심해서 개혁 세력을 거세시킨 꼴이었다. 

언제나 정치의 본질은 경제적 기득권이다. 조선 개국은 거칠게 보자면 부르주아 혁명과 흡사한 구석이 있다. 사대부가 중산층이다. 지식과 자본을 축적한 중산층은 필연적으로 정치 권력을 원한다. 혁명이 중산층의 개혁을 요구하는 순간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중산층은 순식간에 보수반동의 지지자로 돌변한다. 혁명을 일으키려면 중산층한테 경제적 기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혁명을 완수하려면 중산층의 경제적 기득권까지 개혁해야 한다. 정도전은 바로 여기서 숙청당했다. 

보통은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립을 신권주의와 왕권주의의 싸움으로 설명한다. 사실 신권주의니 왕권주의니 하는 권력 구조의 문제는 허울이고 명분일 뿐이다. 어쩌면 그걸 진심으로 믿었던 건 왕이 되고자 했던 이방원 뿐이었다. 이성계와 이방원은 정도전과 조준과 하륜과 그들로 대표되는 지배 세력이 벌이는 정쟁의 도구였을 뿐이다. 

현대 정치에서도 똑같다. 현대 민주주의는 언제나 중산층 혁명을 꿈꾼다. 그게 피의 혁명이든 선거 혁명이든 상관없다. 중산층이 개혁에 힘을 실어주느냐 반동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정국의 향방이 바뀐다. 현대의 중산층은 조준 같은 사대부만큼이나 비겁하다. 게다가 중산층을 조종하는 하륜 같은 재벌과 토호들이 뒤에 숨어 있다. 현대의 중산층 혁명이 조선 개국보다도 어려운 이유다. 

정도전을 얽어맸던 왕권이냐 신권이냐의 이념 논쟁은 요즘으로 치면 종북이냐 좌빨이냐의 논리와 유사하다. 신권을 주장하면 자칫 역적으로 몰려서 정권 안보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결국 현대의 숱한 정도전들도 역사 속 정도전처럼 눈앞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과 등 뒤의 적한테 쓰러져갈 수밖에 없다. 

이방원도 결국 왕이 되자 정도전과 똑같은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힌다. 사대부들의 토지를 줄이고 국가 소유 토지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지만 번번히 좌절된다. 기득권 사대부들은 정도전에서 이방원으로 말을 갈아탔을 뿐 원치 않는 곳으로 따라갈 생각은 없었다. 

이방원이 집권 말년에 부분적으로나마 토지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다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이방원는 공포 정치를 펼쳤다. 정도전을 좌파 파시스트라며 척살한 기득권 세력은 이방원의 우파 파시즘에 죽어나가야 했다. 

정도전 사후 600년이 넘도록 정치의 본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정치의 본질은 누가 대권을 잡느냐의 정쟁이 아니다. 어느 세력이 왕이나 대통령을 앞세워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대할 것인지의 이권 다툼이다. 이념도, 국가도, 왕조도, 사상도, 제도도, 결국 내부 기득권 세력들끼리의 세력 균형에 따라 이용될 뿐이다. 진짜 싸움은 늘 시장에서 벌어진다. 정도전의 도전과 실패는 그 사실을 웅변한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조재현이 연기하는 정도전은 그런 기득권층을 향해서 이렇게 외친다. “이런 밥버러지들.” 언제나 밥그릇이 문제다.







출처 : 에스콰이어 2014년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