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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2 중국의 개콘 표절. 그리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고찰 2
  2. 2014.02.17 대한민국은 하청공화국이다 1

중국의 개콘 표절. 그리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고찰

우리 사는 이야기 2014. 10. 2. 13:44


중국의 짭퉁 품질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서 있습니다. 'A급'이라고 불리죠. 전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차이나타운과 중국인들이 많이 상주하고있고, 그 곳에서 발견한 새로운 문화 (유형이던 무형이던)를 따라하고 싶어하는 심정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적으로 짭퉁에 대한 단속이 따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가짜 술, 가짜 자동차, 가짜 핸드폰, 가짜 음식(...) 까지 판을 칩니다. 중국이 제조업의 공룡으로 떠오른 데는 이런 배경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조업도 모자라서 이제는 문화까지도 카피를 하더군요



KBS "중국, '개콘-시청률의 제왕' 그대로 베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풍경인데.. 중국어가 써있군요




이쯤되면 차용도 아니고 표절이죠. 너무 대놓고 베껴서 우리나라 예능프로를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예능프로들이 일본 예능 포맷을 그대로 써서 표절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 어언 10여년 전 이야기 입니다. 이 표절 시비는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중국이 예능 후진국에서 서서히 발전해 나가는 과도기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볼 수 있겠고, 부정적으로 해석해보면 그 당시의 대한민국이나 지금의 중국이나 둘다 지적재산, 즉 무형자산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공통적 본질이 발견됩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모두, 제조업과 수출을 통해 초고속 경제발전을 이뤄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양이 급속히 불어나다보니 내실이 부족하죠. 눈에 보이는 것만 돈이라고 간주하는 겁니다. 제조업이 대한민국과 중국의 산업 피라미드의 맨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산업은 자연스레 제조보다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구요. 그러다보니 무형의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풍조가 생겨난 듯 합니다. 머리 싸매고 쥐어짜내서 나오는 생각들이 다 돈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거죠. 



미국 생활 5년 중에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을 꼽자면, 조별 과제를 위해 토론하던 중에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낸 자료를 마치 스스로의 아이디어인냥 발표하고 까불다가 딱걸려서 거의 매장 당했던 일입니다. 조원들이 무섭게 몰아붙이고는 그 다음부턴 필요한 상황 아니면 저한텐 말도 안걸더군요. 죄를 지은 기분이었습니다. 미국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시킵니다. 아이디어 도용을 용납하지 않으며,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칭찬해주는 문화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육부터 우리와는 다른데, 그들은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는 학생의 의견마저도 존중해주는 교육을 해왔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왠만한 분들 다 아시다시피 '맞다/틀리다'로만 가르치고, 틀린 답에 대해서는 재고조차 크게 하지 않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최적인지만 배우죠. 창의성은 함몰되고 베껴도 정답이면 된다는 교육방식의 폐단이 선진국으로 진행되어 가는 단계의 대한민국에서 드러나고 있는 중입니다. 참고로 미국에선 논문 표절같은 경우에는 중범죄에 해당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 걸리면 그만'인 식이지만요. 논문표절땜에 정계진출 못하고있는 교수님들이 대한민국에 수두룩하다카더라



여하튼 미국의 이러한 교육방식 하에서, 학생들은 타인의 지적재산에 돈을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로,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은 기업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들이 있다면 그들을 인수하는 형태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이디어를 존중해주는 풍토가 조성이 되어 있는 것이죠. 그렇게 제조가 아닌 지식이 산업피라미드의 최상층부에 자리하기 때문에 위대한 발명품들이 화수분처럼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삼성전자는 아이폰의 아이디어를 채용하여 규모의 경제로 밀어부치는 전략을 사용해서 세계 최강의 스마트폰 기업 중 하나로 발돋움 했습니다만, 어딘가 내실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이템 하나 잡아다가 고객 세그먼트별로 쪼개서 맞춤 상품군을 만들고 많이 찍어낸다는 전략으로 한동안 애플보다 시장 점유율을 높게 가져갔었습니다만, 그것은 본질적인 성장동인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삼성과 비슷한 사업형태로 더 크게 규모의 경제 전략을 밀어부치는 회사가 나타난다면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되어있거든요. 그 좋은 예시가 중국의 스마트폰 회사인 '샤오미' 되겠습니다. 이 회사 요즘 엄청나게 핫합니다. 갤럭시 시리즈와 별 차이 없는 성능의 물건을 훨씬 싸게 살 수 있다면, 소비자들이 삼성 물건을 살 이유가 없겠죠. 게다가 삼성의 갤럭시 브랜드가 그 프리미엄 가격을 감당하고서라도 돈을 지불하고 싶을 만큼 세계적으로 이미지 밸류가 강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실적부진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여집니다. (참고로 저는 갤럭시노트2를 쓰고 있습니다. 맹목적인 애플 지지자앱등이가 아님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최근에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최지성 사장이 추석연휴에 삼성전자 중국법인에 방문해서 실적부진을 이유로 법인장을 조지고 왔다는 뉴스가 떴었는데, 법인장 조져서 해결될 일이면 진작에 해결됐을 일이겠죠. 보다 나은 아이디어를 채용해서 타 스마트폰과는 구분되는 장점을 만들어 냈어야만 했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규모를 불리는 것만으로 실적이 오르던 시대는 저물었으니까요.



이처럼 무형자산의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죠. 기업들이 비싼 돈 들여서 컨설팅회사와 계약을 맺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게 다 지식(무형자산)값입니다. 자신들에게 없는 지식을 외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기업에 녹여내기 위함인 것이죠. 모르는 꼰대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으니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라는 식의 말로 폄훼를 하곤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그들이 젊을 적 열심히 들었던 조용필의 위대한 음악들도 다 그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의 산출물일겁니다. 



광고도, 음악도, 방송도 마찬가지로 무형자산입니다. 모두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Intangible한 자산들인 거죠. 최근에 몇몇 음악 아티스트들이 Melon과 같은 스트리밍 기업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티스트들이 만든 음악(무형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기업의 이윤 추구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이버나 멜론같은 사이트들 보면 대체 저 중에 얼마나 아티스트들한테 떨어질까 싶을 정도로 어이없이 저렴한 값에 음악을 팔고 있더군요. 확실히 대한민국은 무형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에 박하다는 느낌입니다. 대형 스트리밍 회사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의식에도 장애가 있습니다. 무료로 음원 구했다는 걸 SNS에 자랑조로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괘씸함을 초월하여 그냥 안쓰럽다는 생각만 듭니다. 좋은 음악 들었지, 감동 받았지, 근데 왜 돈은 안내냔 말입니다. 거지인가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합니다.



....라고 개콘을 표절한 중국 방송국 PD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표절은 절도입니다. 남의 무형자산을 훔쳐서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는 명백히 절도입니다. 지적재산권 침해라는게 그런 뜻이죠.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것도 같습니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제조업과 수출로 갑자기 성장했고, 돈이 좀 생겼으니 Fancy한 것도 좀 보고싶고, 가만보니 한류가 좀 핫해보이니까 한번 흉내내볼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요즘에나 예능 퀄리티가 올라갔지, 예전에는 일본이나 미국 예능 포맷 그대로 옮겨다가 재미를 많이 봤었으니 중국의 지금 행태가 이해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 '별에서 온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가 중국에서 촬영 중이라고 했는데, 중국인들의 한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죠. 적어도 문화 면에서, 중국은 선진 문화 컨텐츠를 많이 누려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국입니다. 컨텐츠 발전을 위한 시도 자체는 존중하고 싶네요. 하지만 표절을 한 것은 분명히 지탄받아 마땅하며, '인용'을 하는 것과 '복사'를 하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므로 앞으로는 이와 같은 일이 잦아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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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하청공화국이다

우리 사는 이야기 2014. 2. 17. 13:07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제조업 기반 산업은 아웃소싱을 통해 빌려온 창조성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 창조성을 착취 하려고만 든다.



올해 벽두부터 SNS에선 패러디물 하나가 큰 화제가 됐다. 2011년에 열린 64회 칸영화제 포스터를 한국에서 만들었으면 어떻게 망가지게 됐을지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하청받은 디자이너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원청업체의 담당자가 어떻게 망치는지 고발한 것이다. 먼저 미니멀하게 디자인된 실제 포스터가 등장한다. 바로 옆엔 이른바 컨펌해줄 권한이 있는 담당자의 품평이 달려 있다. “디자인 욕심은 알겠는데요. 너무 마이너해요.” 이어서 담당자의 품평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포스터가 등장한다. “수정 사항 봤는데요. 내부 논의 결과 반응이 안 좋네요. 그냥 배우 얼굴 크게 해주시고요. 영화제 이름 잘 보이게 해주시고요.” 이렇게 해서 포스터엔 “5월 당신의 감성을 충족시킬 명품 영화제가 온다”라는 설명적인 카피가 실리게 된다. 원본 포스터는 설명적이기보단 감각적으로 만들어졌다. 마지막 포스터는 전달하려는 정보만 가득하다. 포스터가 아니라 전단지다.
웃기다. 웃어넘길 얘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폐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부르짖고 있다. 시장에 벤처기업만 많이 깔아놓는다고 창조경제가 창조되는 게 아니다. 기존 기업들의 활동까지 창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애써 육성된 벤처기업은 무용지물이 된다. 지금의 한국 경제 구조 안에선 신생 벤처기업들은 우선 기존 기업들의 하부구조를 이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출 의존형인 한국 경제에서 돈이 있는 쪽은 수출 대기업밖에 없다. 비좁은 내수 시장에 의존해서 신생 기업이 자본을 축적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20년 동안 내수 기반으로 자본 축적에 성공한 벤처기업은 넥슨이나 NC소프트 같은 게임 업체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업체 정도다. 이들도 창업 초기엔 기존 대기업들의 하청업체였다. 지금도 별다르지 않다. 벤처기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디어로 내수 시장에서 단박에 대박을 내기를 바란다면 그건 창조경제가 아니라 ‘로또경제’다. 창조경제도 일단은 기존 경제에 기생할 수밖에 없단 말이다.

 

기존 기업들은 대부분 제조업 기반이다. 신생 벤처기업은 대부분 지식 기반이다. 자연히 한국 기업 생태계는 제조업 기반 산업이 상부구조를 이루고 지식 기반 산업이 하부구조를 이루는 이중구조로 재편돼 왔다. 제조업이 지식업에 하청주는 경제 말이다. 칸영화제 포스터를 휴대전화나 자동차 CF로 바꿔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에선 제조를 위해 지식이 봉사한다.
사실 한국 경제는 1970년대 중화학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던 시기부터 단일한 하청 경제 구조를 구축해왔다. 완제품을 내다 파는 수출 대기업을 필두로 수많은 부품 업체와 협력 업체들이 하청과 재하청과 재재하청과 재재재하청 기업들과 견고한 피라미드 구조를 이뤘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런 제조업 하청 체제가 밑바탕이 됐다.
제조업 하청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는 명료했다. 자동차 조립 업체와 부품 업체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동차 조립 업체는 완제품을 설계한다. 완제품을 부품 단위로 잘게 쪼갠다. 부분 부분까지 부품 생산을 하청준다. 이때 하청업체는 설계에 따라 정확하게 부품을 만들어야 한다. 길이와 무게와 모양까지 딱 들어맞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완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하청 경제는 필연적으로 가혹한 착취를 동반한다. 누군가 대신 노동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궁극적 목표다.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식민지주의 역시 우리나라 사람 대신 다른 나라 사람에게 노동을 하청 주는 과정이었다. 21세기에도 하청에 의한 착취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누가 누구에게 하청을 주느냐만 바뀌었을 뿐이다.
자연히 한국의 제조업 하청 경제에선 원청업체가 하청업체한테 끊임없이 품질 개선을 요구하는 게 관행이 됐다. 이집트 파라오는 유대인들한테 노동의 양을 착취했다. 제조업 하청 경제에서 착취하는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가혹한 품질 제일주의는 한국의 제조업 기술력을 단시일 내에 끌어올렸다. 앞서 일본과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 경제를 견인한 건 제조업 하청 경제만이 아니었다. 건설업 하청 경제도 있었다. 제조업 하청 경제가 정밀함에 집중한다면 건설 하청 경제는 저렴함에 집착한다. 건설업 역시 제조업처럼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늘어선 피라미드 구조다. 차이가 있다. 제조업에서 생산한 제품들은 작동한다. 휴대전화는 울리고 자동차는 달리고 배는 떠다닌다. 성능을 평가받는단 얘기다. 건설업에서 생산한 제품은 작동하지 않는다. 아파트도 서 있고 빌딩도 서 있고 다리도 서 있을 뿐이다. 건설업의 경쟁은 성능이 아니라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으로 나타난다.
결국 건설 하청 경제는 원청업체가 가혹하게 하청업체한테 원가 절감을 주문하는 관행을 낳았다. 제조업 하청 경제는 가혹했지만 그나마 기술력 향상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이뤘다면 건설 하청 경제는 오직 착취뿐이었다.
한국 기업들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지식 기반 사업에서도 빠르게 아웃소싱 비율을 높여왔다. 기업 내부의 지식 기반 활동은 대표적으로 경영 전략과 광고 홍보와 마케팅 리서치가 있다. 과거엔 이런 활동은 기업 내부 조직이 도맡아 했다. 지식 기반 아웃소싱은 미국에선 1990년대부터 경영의 대세였다. 비용 절감 때문이었다. 고용 유연화를 위해서였다. 하청업체는 원청업체가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시제품을 다시 제작한다. 경우의 수가 많아지는 만큼 원청업체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많아진다. 하청업체가 늘어날수록 같은 비용에도 일의 절대량은 증가한다. 최종 제품의 질도 높일 수 있다.
이런저런 유리함들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빠르게 지식 기반 업무에 대해서도 아웃소싱 비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정부도 동반 성장이니 일감 나누기니 하는 구호를 내걸면서 아웃소싱을 장려했다. 지금은 하청과 재하청과 재재하청까지 확장됐다. 덕분에 제조업 기반 하청 경제와 건설업 기반 하청 경제에 이어 지식 기반 하청 경제가 생겨나게 됐다. 2013년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의 하도급 거래에 대한 서면 조사를 실시했다. 크게 제조와 건설과 용역이란 3개 업종에서 10만 개 사업자가 조사 대상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중에서 불과 5000개 업체만을 원청업체로 분류했다. 나머지 9만5000개 사업자가 모두 하청과 재하청과 재재하청업체라고 봤다. 그나마 이것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태 조사를 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된 숫자다. 통계로 잘 잡히지 않는 재재재재재하청업체까지 더하면 그 숫자를 정확하게 가늠하긴 어렵다. 이쯤되면 한국은 하청 공화국이다.
문제는 지식이 제조에 봉사해야 하는 한국적 현실이다. 제조업과 건설업의 하청 논리가 지식 경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식 기반 산업에선 창의적 아이디어가 곧 원자재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안 된다. 그런 아이디어가 제대로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지식 기반 하청 경제 구조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아웃소싱은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최종 완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최고의 부품을 모아서 완제품을 만든다는 개념이었다. 한국에선 정반대로 작동한다. 포스터 패러디가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부분이다.

 

칸영화제 포스터 패러디 같은 일이 일선 현장에선 거의 매일 벌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하청업체 담당자는 말한다. “클라이언트에 해당되는 대기업 담당자는 거의 막무가내로 불가능한 결과를 요구합니다.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면 하청업체니까 무조건 해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우기죠.” 제조업처럼 품질 개선을 가혹하게 요구하는 셈이다. 제조업의 경우엔 부품의 정밀함을 요구하려면 설계도 정밀해야 했다. 어떤 부품에서 1밀리미터 오차가 나면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품질 개선을 강요할 수 있었다. 지식 기반 산업에선 그런 기준이 없다. 하청업체한테 품질 개선을 요구하지만 정작 기준은 주관적이다. 제조업 기반 하청 경제 구조에선 제품을 조립하는 원청업체 담당자가 하청업체 관계자보다 고수였다. 직접 설계를 했으니 당연하다. 지식 기반 하청 경제에선 거꾸로다. 하청업체가 더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제조업 기반 사고에 익숙한 기업 담당자는 가혹하게 품질 개선만 요구할 뿐 무엇을 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오히려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호령하는 꼴이 된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하청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결과물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사실 원청업체 담당자도 결정권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결과물을 갖고 상사한테 보고해야 하는 거죠. 한두 명도 아닙니다. 결제 라인이 본부장을 거쳐 사장까지 첩첩산중이죠. 그들의 요구에 맞추려다 보면 현장의 말을 들을 겨를이 없어요.” 상부 구조 안에서도 내부적으론 위계가 복잡하단 얘기다. 현장과 맞닿아 있는 일선 담당자는 사실 꼬리인 경우가 많다. 사장이나 본부장은 하청업체 실무진과 말도 섞지 않는다. 당연히 결과물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진다. 설사 원청업체 담당자와 하청업체 실무자가 생각이 일치해도 그런 창의적 아이디어들은 이내 경영진한테 가로막히기 일쑤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하청업체 직원은 말한다. “품질 개선을 요구하지만 기준이 모호한 것도 어렵고 그렇게 애써도 1년쯤 되면 하청업체를 바꿔버리려고 해서 더 불안합니다.” 건설업 하청 경제의 단점이 고스란히 이식된 경우다. 제조업 하청 경제에선 원청업체도 종종 기술력 있는 하도급 업체 앞에선 눈치를 봤다. 해당 업체가 경쟁사에 납품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지식 기반 하청 경제에선 품질의 기준이 모호하다. 상부 원청업체한텐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눈도 부족하다. 그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하청업체를 바꾸길 반복한다. 하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깎는 데만 익숙하다. 이런 게 반복되면 지식 기반 하청업체들은 도무지 성장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을 따내려는 하청업체들이 생겨난다. 비리가 발생한다. 건설업 하청 경제에서 일어났던 악순환이다.
한국처럼 내수 시장이 취약한 나라에선 수출 제조기업이 언제나 갑일 수밖에 없다. 그 밑으로 수많은 을들이 늘어서는 국가적 하청 경제는 필연적이다. 이젠 제조업 역시 지식 기반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는 이젠 단순히 탈것이 아니다. 자동차는 패션이 될 수도 있고 품격이 될 수도 있고 생활이 될 수도 있다. 제품의 품질보다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상부의 제조업체들은 점점 더 하부의 지식 기반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휴대 전화를 전화기가 아니라 계층의 표식으로 만들려면 패션 업체와 마케팅 업체와 홍보 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외부 하청업체의 창조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작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제조업 기반 산업은 아웃소싱을 통해 빌려온 창조성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 창조성을 착취하려고만 든다. 당연히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내수에 기반한 지식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가장 바람직한 발전 모델은 지식 기반 기업이 제조업체의 상부 구조를 이루는 그림이다. 미국에선 검색업체 구글이 제조업체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한국에선 이런 역전은 상상하기 어렵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선 한국은 언제나 제조업의 나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기대할 수 있는 건 상부의 제조업 기반 산업이 하부의 지식 기반 산업을 이해할 수 있는 눈과 귀를 갖는 길 뿐이다. 창조를 착취하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를 재창조해야 한다. 창조경제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원청과 하청의 소통 속에 창조가 있다.



출처 : 에스콰이어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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