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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안철수는 왜 실패했나

우리 사는 이야기 2014. 10. 6. 15:36


제가 민주당을 먹었습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이 민주당과 합당을 결정한 직후 당시 핵심 당직자들한테 했다고 알려진 얘기다. 201432일 새벽이었다.


“2석의 새정치연합이 126석의 민주당을 집어삼켰다.” 32일 오전 10시 안철수 위원장과 김한길 대표가 국회사랑재에서 합당을 발표한 직후 언론의 시각은 대체로 이랬다. “민주당을 먹었다는 안철수 위원장의 셈법과 별다르지 않았다. 아직 창당도 하지 못한 정당이 반세기가 넘은 정통 야당과 55 합당을 했다면 누가 봐도 성공한 M&A였다. 안철수 위원장은 단숨에 제1야당의 공동 대표가 됐다.




정작 먹은 정당과 먹힌 정당의 분위기는 겉보기와는 정반대였다. 사실 민주당은 가만두면 가라앉을 배였다. 이미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단 자리 숫자까지 곤두박질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이 이반되고 있었다. 때마침 바로 옆에서 새로운 배가 건조되고 있었다. 안철수호였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강력한 엔진까지 갖추고 있었다. 난파선을 구할 방법은 안철수라는 새 배 안에 민주당이라고 하는 헌 배를 포개 넣는 방법뿐이었다. 김한길 대표는 담판을 통해 그걸 이뤄냈다. 33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한길 대표가 박수갈채를 받은 이유다.


반대로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들은 사분오열됐다. 당연했다. 새정치연합 입장에선 새 배와 헌 배를 맞바꿀 이유가 없었다. 물론 새정치연합한테도 약점은 있었다. 신생 정당인 만큼 조직력과 자금력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의 조직과 인물을 가져올 수만 있으면 일거에 해결될 문제였다. 합당 카드도 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단 얘기다. 이 때 안철수 위원장의 결정적인 약점이 다시 한 번 노출됐다. 승부사 기질의 결여였다.

 




안철수 위원장은 그동안 결정적인 승부처마다 실패했다. 201192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설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였다. 안철수 현상이 현실 정치로 옮겨붙은 발화점이었다. 이제 출마만 하면 당선될 일이었다. 박원순 희망 제작소 대표와 담판을 벌인 끝에 출마의사를 접었다. 그땐 아름다운 양보 같았다. 냉정하겐 마땅히 챙겼어야 했던 자기 몫의 정치적 자산을 거져 내준 꼴이었다. 지금 박원순 시장은 재선에 성공하면서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평가받는다. 안철수와 박원순은 그 때 명암이 갈렸다.


201212월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선에 출마했지만 완주하질 못했다. 안철수 후보의 등장으로 박근혜 대세론은 크게 위협받았다. 남은 과제는 후보 단일화였다. 돌연 안철수 후보는 사퇴를 결정했다. 승부처에서 또 다시 칼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별로 아름답지 않은 양보였다. 극적인 드라마를 완결짓지 못한 반쪽 단일화는 대선에서 기대만큼 파급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문재인 후보는 낙선했다.


합당도 마찬가지였다. 새정치연합은 이미 민주당을 안에서부터 크게 흔들어 놓은 상태였다. 적잖은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은 새정치연합으로 배를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6.4 지방선거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7.30 재보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면 야권을 재편시킬 수 있다는 로드맵도 다 짜인 상태였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결국 승부였다. 안철수 대표는 또 승부를 피했다.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밖에서 민주당을 삼켜먹는 것보단 안에서 민주당을 부셔먹는 게 당장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였다.


안철수 대표의 정치인생을 결정한 패착이었다. 민주당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안철수 현상이 기득권 정치에 수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안철수 대표는 자신이 어디로 가든 안철수 현상이 따라올 거라고 여겼다. 실제로 안철수 현상이 시작된 2011년부터 3년 동안 내내 그랬다. 안철수 대표가 승부처에서 머뭇거리고 결국 패배하고 돌아와도 안철수 현상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안철수 현상은 결국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했다. 여야 모두의 유권자들이 한국의 대의 정당 정치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안철수 대표처럼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정치인이 제대로 된 대의 정치를 실현해주기를 바랐다. 한국사회 각계 각층의 지식인들도 같은 생각들이었다. 유수한 학자들과 명망가들이 안철수 대표 곁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이유다. 그 땐 안철수 대표가 곧 안철수 현상이었다.


비록 제3지대 창당이라는 포장을 하긴 했지만 합당은 결국 안철수 대표가 기존 정당에 합류한 그림이었다. 이 때 안철수 대표와 안철수 현상은 결정적으로 괴리되기 시작했다. 먼저 구름처럼 안철수 신당에 합류했던 인사들이 안개처럼 떠나가기 시작했다. 말이 합당이었다. 사실상 안철수 대표 혼자서 단기필마로 민주당 안으로 들어간 꼴이었다.


안철수 대표는 이때부터 진짜 헤매기 시작했다. 사실상 혈혈단신인데도 자신이 민주당을 먹었다고 착각했다. 오히려 민주당에 새정치라는 새로운 가치만 따먹힐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위험은 간과했다. 세력도 조직도 없는 상태로 당 대표라는 자리만 갖고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운영할 수 있다고 오판했다. 기업의 CEO와 정당의 대표는 다르다는 걸 겪어본 적이 없었다. 대표이사는 기업의 주인이지만 대표 의원은 정당의 대리인일 뿐이다.


실제로 안철수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간판만 바꿔 달았지 조직은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계파 난립이 극심한 정당이다. 기껏 친박과 비박 정도로 나뉘는 새누리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해로 뭉친 여당과 이념으로 뭉친 야당의 태생적 차이다. 당대표라도 계파 간 알력 다툼 탓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민주당에 당대표 출신이 넘쳐나게 된 이유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노동당 개혁에 나서면서 당을 개혁하는 일이 나라를 개혁하는 일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계파 안배와 정세 변화에 따라 돌아가면서 당 대표를 했지만 누구도 당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태생부터 민주당의 유전병을 물려받았다. 이대로라면 자칫 안철수 대표 자신도 앞선 민주당 대표들처럼 선거용 간판으로 전락할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안철수 대표한텐 당을 장악할 조직이 전무했다. 자초한 일이었다. 결국 김한길 대표의 전략과 전술과 조직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김한길 대표가 사석에서 안철수 대표를 철수야라고 부를 만큼 서로 막역한 사이였다.


김한길 대표는 지략가와 모사꾼의 양면성을 지닌 정치인이다. 김한길 대표는 안철수 대표를 끌어들여서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를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대통력제 국가에서 당내 계파란 결국 유력한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친노 쪽엔 문재인 의원이 있었다. 비노쪽엔 마땅한 대항마가 없었다. 김한길 대표는 국정원 댓글 사건 정국에서 여권을 상대로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제 집권 1년 차인 박근혜 정부는 막강했다. 안철수 카드는 당내에서 문재인 의원과 친노를 견제하면서 김한길 대표의 당권을 강화하기 위한 지렛대였다.


김한길 대표는 안철수 대표를 간판으로 내세운 다음 당내 세력 확장에 열을 올렸다. 김한길과 안철수 체제가 살려면 당권을 잡고 있을 때 확실하게 세력을 구축해놓아야 했다. 견제대상은 친노 진영과 박원순 시장이었다. 당리당략으론 맞았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선 무리한 전략 공천이 이어졌다. 말이 좋아서 전략 공천이지 결국 탑다운식 총재정치였다. 12년 전엔 오픈 프라이머리로 대통령까지 배출한 정당의 비극적 퇴행이었다.


문제는 모사 정치의 유탄을 안철수 대표가 고스란히 다 맞을 수밖에 없다는 정치현실이었다. 새정치의 상징은 안철수 대표였다. 결국 인철수 현상마저 안철수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안철수 대표를 통해 대안 정당을 기대했던 유권자 집단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안철수 대표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안철수 대표는 안철수 현상이 내려준 사명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엔 정치인으로서 승부사적 기질이 결여된 선천적 약점 탓이었다.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지만 그들이 왜 자신한테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았던 후천적 CEO 리더십 탓이었다. 이건 대의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과 훈련 부족으로 나타났다. 나중엔 안철수 현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오만함 탓이었다. 안철수 의원의 실패는 안철수 현상이란 시대적 요구를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감당하지 못해서 빚어진 일이다.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대표는 이제 완전히 괴리됐다. 안철수 의원한테 재기할 여지가 별로 없는 이유다. 안철수 현상이 없는 안철수는 초선의원일 뿐이다.


2012919일이었다. 안철수 원장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출마 선언을 마무리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안철수 원장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2년 뒤 안철수 의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미래가 됐다. 흩어진 과거가 됐다.




출처 : 에스콰이어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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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하청공화국이다

우리 사는 이야기 2014. 2. 17. 13:07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제조업 기반 산업은 아웃소싱을 통해 빌려온 창조성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 창조성을 착취 하려고만 든다.



올해 벽두부터 SNS에선 패러디물 하나가 큰 화제가 됐다. 2011년에 열린 64회 칸영화제 포스터를 한국에서 만들었으면 어떻게 망가지게 됐을지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하청받은 디자이너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원청업체의 담당자가 어떻게 망치는지 고발한 것이다. 먼저 미니멀하게 디자인된 실제 포스터가 등장한다. 바로 옆엔 이른바 컨펌해줄 권한이 있는 담당자의 품평이 달려 있다. “디자인 욕심은 알겠는데요. 너무 마이너해요.” 이어서 담당자의 품평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포스터가 등장한다. “수정 사항 봤는데요. 내부 논의 결과 반응이 안 좋네요. 그냥 배우 얼굴 크게 해주시고요. 영화제 이름 잘 보이게 해주시고요.” 이렇게 해서 포스터엔 “5월 당신의 감성을 충족시킬 명품 영화제가 온다”라는 설명적인 카피가 실리게 된다. 원본 포스터는 설명적이기보단 감각적으로 만들어졌다. 마지막 포스터는 전달하려는 정보만 가득하다. 포스터가 아니라 전단지다.
웃기다. 웃어넘길 얘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폐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부르짖고 있다. 시장에 벤처기업만 많이 깔아놓는다고 창조경제가 창조되는 게 아니다. 기존 기업들의 활동까지 창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애써 육성된 벤처기업은 무용지물이 된다. 지금의 한국 경제 구조 안에선 신생 벤처기업들은 우선 기존 기업들의 하부구조를 이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출 의존형인 한국 경제에서 돈이 있는 쪽은 수출 대기업밖에 없다. 비좁은 내수 시장에 의존해서 신생 기업이 자본을 축적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20년 동안 내수 기반으로 자본 축적에 성공한 벤처기업은 넥슨이나 NC소프트 같은 게임 업체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업체 정도다. 이들도 창업 초기엔 기존 대기업들의 하청업체였다. 지금도 별다르지 않다. 벤처기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디어로 내수 시장에서 단박에 대박을 내기를 바란다면 그건 창조경제가 아니라 ‘로또경제’다. 창조경제도 일단은 기존 경제에 기생할 수밖에 없단 말이다.

 

기존 기업들은 대부분 제조업 기반이다. 신생 벤처기업은 대부분 지식 기반이다. 자연히 한국 기업 생태계는 제조업 기반 산업이 상부구조를 이루고 지식 기반 산업이 하부구조를 이루는 이중구조로 재편돼 왔다. 제조업이 지식업에 하청주는 경제 말이다. 칸영화제 포스터를 휴대전화나 자동차 CF로 바꿔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에선 제조를 위해 지식이 봉사한다.
사실 한국 경제는 1970년대 중화학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던 시기부터 단일한 하청 경제 구조를 구축해왔다. 완제품을 내다 파는 수출 대기업을 필두로 수많은 부품 업체와 협력 업체들이 하청과 재하청과 재재하청과 재재재하청 기업들과 견고한 피라미드 구조를 이뤘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런 제조업 하청 체제가 밑바탕이 됐다.
제조업 하청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는 명료했다. 자동차 조립 업체와 부품 업체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동차 조립 업체는 완제품을 설계한다. 완제품을 부품 단위로 잘게 쪼갠다. 부분 부분까지 부품 생산을 하청준다. 이때 하청업체는 설계에 따라 정확하게 부품을 만들어야 한다. 길이와 무게와 모양까지 딱 들어맞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완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하청 경제는 필연적으로 가혹한 착취를 동반한다. 누군가 대신 노동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궁극적 목표다.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식민지주의 역시 우리나라 사람 대신 다른 나라 사람에게 노동을 하청 주는 과정이었다. 21세기에도 하청에 의한 착취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누가 누구에게 하청을 주느냐만 바뀌었을 뿐이다.
자연히 한국의 제조업 하청 경제에선 원청업체가 하청업체한테 끊임없이 품질 개선을 요구하는 게 관행이 됐다. 이집트 파라오는 유대인들한테 노동의 양을 착취했다. 제조업 하청 경제에서 착취하는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가혹한 품질 제일주의는 한국의 제조업 기술력을 단시일 내에 끌어올렸다. 앞서 일본과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 경제를 견인한 건 제조업 하청 경제만이 아니었다. 건설업 하청 경제도 있었다. 제조업 하청 경제가 정밀함에 집중한다면 건설 하청 경제는 저렴함에 집착한다. 건설업 역시 제조업처럼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늘어선 피라미드 구조다. 차이가 있다. 제조업에서 생산한 제품들은 작동한다. 휴대전화는 울리고 자동차는 달리고 배는 떠다닌다. 성능을 평가받는단 얘기다. 건설업에서 생산한 제품은 작동하지 않는다. 아파트도 서 있고 빌딩도 서 있고 다리도 서 있을 뿐이다. 건설업의 경쟁은 성능이 아니라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으로 나타난다.
결국 건설 하청 경제는 원청업체가 가혹하게 하청업체한테 원가 절감을 주문하는 관행을 낳았다. 제조업 하청 경제는 가혹했지만 그나마 기술력 향상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이뤘다면 건설 하청 경제는 오직 착취뿐이었다.
한국 기업들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지식 기반 사업에서도 빠르게 아웃소싱 비율을 높여왔다. 기업 내부의 지식 기반 활동은 대표적으로 경영 전략과 광고 홍보와 마케팅 리서치가 있다. 과거엔 이런 활동은 기업 내부 조직이 도맡아 했다. 지식 기반 아웃소싱은 미국에선 1990년대부터 경영의 대세였다. 비용 절감 때문이었다. 고용 유연화를 위해서였다. 하청업체는 원청업체가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시제품을 다시 제작한다. 경우의 수가 많아지는 만큼 원청업체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많아진다. 하청업체가 늘어날수록 같은 비용에도 일의 절대량은 증가한다. 최종 제품의 질도 높일 수 있다.
이런저런 유리함들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빠르게 지식 기반 업무에 대해서도 아웃소싱 비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정부도 동반 성장이니 일감 나누기니 하는 구호를 내걸면서 아웃소싱을 장려했다. 지금은 하청과 재하청과 재재하청까지 확장됐다. 덕분에 제조업 기반 하청 경제와 건설업 기반 하청 경제에 이어 지식 기반 하청 경제가 생겨나게 됐다. 2013년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의 하도급 거래에 대한 서면 조사를 실시했다. 크게 제조와 건설과 용역이란 3개 업종에서 10만 개 사업자가 조사 대상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중에서 불과 5000개 업체만을 원청업체로 분류했다. 나머지 9만5000개 사업자가 모두 하청과 재하청과 재재하청업체라고 봤다. 그나마 이것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태 조사를 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된 숫자다. 통계로 잘 잡히지 않는 재재재재재하청업체까지 더하면 그 숫자를 정확하게 가늠하긴 어렵다. 이쯤되면 한국은 하청 공화국이다.
문제는 지식이 제조에 봉사해야 하는 한국적 현실이다. 제조업과 건설업의 하청 논리가 지식 경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식 기반 산업에선 창의적 아이디어가 곧 원자재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안 된다. 그런 아이디어가 제대로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지식 기반 하청 경제 구조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아웃소싱은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최종 완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최고의 부품을 모아서 완제품을 만든다는 개념이었다. 한국에선 정반대로 작동한다. 포스터 패러디가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부분이다.

 

칸영화제 포스터 패러디 같은 일이 일선 현장에선 거의 매일 벌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하청업체 담당자는 말한다. “클라이언트에 해당되는 대기업 담당자는 거의 막무가내로 불가능한 결과를 요구합니다.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면 하청업체니까 무조건 해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우기죠.” 제조업처럼 품질 개선을 가혹하게 요구하는 셈이다. 제조업의 경우엔 부품의 정밀함을 요구하려면 설계도 정밀해야 했다. 어떤 부품에서 1밀리미터 오차가 나면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품질 개선을 강요할 수 있었다. 지식 기반 산업에선 그런 기준이 없다. 하청업체한테 품질 개선을 요구하지만 정작 기준은 주관적이다. 제조업 기반 하청 경제 구조에선 제품을 조립하는 원청업체 담당자가 하청업체 관계자보다 고수였다. 직접 설계를 했으니 당연하다. 지식 기반 하청 경제에선 거꾸로다. 하청업체가 더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제조업 기반 사고에 익숙한 기업 담당자는 가혹하게 품질 개선만 요구할 뿐 무엇을 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오히려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호령하는 꼴이 된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하청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결과물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사실 원청업체 담당자도 결정권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결과물을 갖고 상사한테 보고해야 하는 거죠. 한두 명도 아닙니다. 결제 라인이 본부장을 거쳐 사장까지 첩첩산중이죠. 그들의 요구에 맞추려다 보면 현장의 말을 들을 겨를이 없어요.” 상부 구조 안에서도 내부적으론 위계가 복잡하단 얘기다. 현장과 맞닿아 있는 일선 담당자는 사실 꼬리인 경우가 많다. 사장이나 본부장은 하청업체 실무진과 말도 섞지 않는다. 당연히 결과물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진다. 설사 원청업체 담당자와 하청업체 실무자가 생각이 일치해도 그런 창의적 아이디어들은 이내 경영진한테 가로막히기 일쑤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하청업체 직원은 말한다. “품질 개선을 요구하지만 기준이 모호한 것도 어렵고 그렇게 애써도 1년쯤 되면 하청업체를 바꿔버리려고 해서 더 불안합니다.” 건설업 하청 경제의 단점이 고스란히 이식된 경우다. 제조업 하청 경제에선 원청업체도 종종 기술력 있는 하도급 업체 앞에선 눈치를 봤다. 해당 업체가 경쟁사에 납품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지식 기반 하청 경제에선 품질의 기준이 모호하다. 상부 원청업체한텐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눈도 부족하다. 그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하청업체를 바꾸길 반복한다. 하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깎는 데만 익숙하다. 이런 게 반복되면 지식 기반 하청업체들은 도무지 성장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을 따내려는 하청업체들이 생겨난다. 비리가 발생한다. 건설업 하청 경제에서 일어났던 악순환이다.
한국처럼 내수 시장이 취약한 나라에선 수출 제조기업이 언제나 갑일 수밖에 없다. 그 밑으로 수많은 을들이 늘어서는 국가적 하청 경제는 필연적이다. 이젠 제조업 역시 지식 기반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는 이젠 단순히 탈것이 아니다. 자동차는 패션이 될 수도 있고 품격이 될 수도 있고 생활이 될 수도 있다. 제품의 품질보다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상부의 제조업체들은 점점 더 하부의 지식 기반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휴대 전화를 전화기가 아니라 계층의 표식으로 만들려면 패션 업체와 마케팅 업체와 홍보 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외부 하청업체의 창조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작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제조업 기반 산업은 아웃소싱을 통해 빌려온 창조성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 창조성을 착취하려고만 든다. 당연히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내수에 기반한 지식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가장 바람직한 발전 모델은 지식 기반 기업이 제조업체의 상부 구조를 이루는 그림이다. 미국에선 검색업체 구글이 제조업체 모토로라를 인수했다. 한국에선 이런 역전은 상상하기 어렵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선 한국은 언제나 제조업의 나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기대할 수 있는 건 상부의 제조업 기반 산업이 하부의 지식 기반 산업을 이해할 수 있는 눈과 귀를 갖는 길 뿐이다. 창조를 착취하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를 재창조해야 한다. 창조경제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원청과 하청의 소통 속에 창조가 있다.



출처 : 에스콰이어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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